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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는 미국 유학 중에 반드시 최면에 관한 한 최고의 자격증인 미국최면의학전문의 자격을 취득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국최면의학전문의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미국 의학박사(나의 경우 이 것은 외국 의과대학 졸업자에게 미국 의과대학 졸업자와 동등한 자격을 주는 시험인 ECFMG(주 1)로 대신했다.), 정신과 전문의 자격(나의 경우는 이 것은 한국의 자격증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이 있어야 하고, 최면에 관한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어야 하며, 최소 3 년 이상 집중적인 최면 공부 및 치료를 한 증거가 필요하며 무엇 보다 최면 의학계에 공헌을 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최면 전문의 학회 회장인 레비탄(Levitan) 박사(주 2)에게 편지를 내어 응시하려는 뜻을 썼더니, 우선 최면치료 시간을 녹화해서 보내라고 하기에 혜란의 동의를 얻어 그녀와의 치료 시간을 녹화해서 보냈었다. 한국말인데 어떻게 하나 물었더니 그는 그가 속해 있는 미네소타 대학에 유학 온 한국 학생을 시켜 해석을 하겠다고 했다.
캠브리지에서 미니아폴리스에 있는 레비탄에게 미국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더니 그는 반가워하면서, 필기 시험에서 낙방하는 응시생들이 많으니 최근 20 년간의 최면에 관한 학술지의 내용들과 단행본들을 위주로 공부하되 특히 최면의 역사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일러주었다.
브라운교수에게 말하여 그의 서재에서 우선 30여권의 책을 빌리고 학술지등은 도서관의 것을 빌려서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하버드 대학교 교정의 중심부인 하버드 야드(주 3)에 이르는데 이 곳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와이드너 도서관이 있다. 와이드너는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이었는데, 대서양에서 처녀 항해 중에 침몰한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다가 배와 같이 실종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기억하기 위해 도서관을 지어 달라고 거액의 돈을 하버드에 기증하였고 그 뜻에 따라 지은 것이 와이드너 도서관으로, 겉모양이 덕수궁의 석조전과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다.
그 곳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마치 학생 시절로 되돌아 간 듯, 내가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인 듯 한 느낌이 들어 자주 나는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기분 좋았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시험이 다가왔다.
이번 시험은 최면 학회가 열리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치루어졌다.
세인트 루이스는 미국 대륙의 한복판에 위치한, 톰 소여의 모험의 무대로 유명한 미시시피 강의 중류에 있는데, 이미 20세기 초반에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하였던 한때는 번성하였던 도시이다. 그 당시에는 경기 침체로 인해 세인트 루이스의 미시시피 강 맞은편 도시인 공장지대는 거의 황폐화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후 몇 년 후에 그 도시의 축구(미식축구; NFL)팀인 카디널스가 그 곳을 떠나야 할 정도로 지방 경제가 침체되었었지만 현재는 다른 축구팀이 그 곳에 오고, 작년 홈런왕 기록을 낸 맥과이어가 속한 야구팀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의 경기를 간혹 TV에서 보면 경기가 다시 회복 된 듯하다. 약 10년전 즉 80년대 말의 미국은 세인트 루이스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경기 침체로 인해 일본에게 뒤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던 시기였다.
서부 개척 시절에는 서부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였던 이 곳에는 제퍼슨 대통령이 미국 영토를 확장 한 것을 기념하는 세인트 루이스의 상징인 제퍼슨 미모리얼 아치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아치는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반달 모양의 것으로 미시시피 강가에 있는데, 지하에는 기념관이 있어 여러가지 기념품들을 팔고 있고, 100미터도 넘을 듯한 꼭대기의 전망대에, 한 칸에 3-4 명이 탈 수 있는 캡슐을 타고 오르면 양 옆으로 거대한 땅의 지평선이 끝도 없이 보였다. 톰 소여의 모험의 무대로 익숙한 미시시피 강은, 아마도 세인트 루이스는 중류인 듯 한데, 자그마한 흙탕물로 된 비교적 큰 개천 정도의 모습으로 강가에 눈에 익은 모양의 유람선도 떠있긴 했지만 그 풍경은 매우 실망 스러웠다.
미시시피 강가 제퍼슨 미모리얼 아치의 바로 옆에 위치한 클래리온 호텔에서 학회와 시험이 있었다. 한쪽은 미시시피 강이고 다른 쪽은 맥과이어의 홈런 장면으로 유명해진 메이저리그 야구장인 부쉬 스타디움 이다.
2 년만에 에리카 프롬 박사를 다시 만났다. 할머니는 그 동안 허리가 더 굽으신 것 같았다.
"최면 전문의 시험을 치려고 해요."
"붙을텐데, 뭐. 안심해요." 라면서 내 등을 툭툭 쳐주었다.
호텔 창 밖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제퍼슨 미모리얼 아치를 보면서 잠을 청했으나 긴장감으로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Good Morning!"
시험지를 든 닥터 레비탄이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시험은 닥터 변 혼자서 봅니다. 나는 시간이 되면 다시 오겠습니다."
커다란 방에 문제지와 나만 남겨두고 레비탄이 나갔다. 중간에 한번은 들어오려나 했는데 끝 날 때까지 한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양심에 맡긴다는 것이겠지.
필기 시험 문제가 예상보다 어려웠다. 사실 뭐 책을 볼래야 볼 것도 없었다. 책에 없는 문제가 많았고 미국의 시사와 연관된 문제들도 있었는데 특히 최면과 재판에 관한 문제들은 미국에 살지 않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사실 들 이었다. 당연히 점심시간에는 의기가 소침해 있었다. 필기 시험에서 60점 미만이면 탈락임으로 자신이 없었다. 필기 시험에서 많이들 떨어진다더니 . . . 입 맛이 없었다.
오후의 오랄 테스트(구두 시험; 말로 문제를 물어보고 답을 하는 것)와 실기 시험(최면을 실제로 유도하고 치료 방법까지 실연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필기, 구두, 실기 시험은 모두 영어)은 클래리온 호텔 7 층의 레비탄이 묵고있는 방에서 있었다. 레비탄과 부회장인 루이지애나 대학의 유윈교수가 시험관으로 들어왔다.
먼저 오랄 테스트. 어려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공포 장애를 최면치료 하던 레지던트가 최면행동치료의 구체적인 방법들 및 그 치료 성적들에 관해 물었습니다. 어떤 문헌들을 찾아보라고 하겠습니까?"
"프로이드 시대의 패스(주 4)란 무엇입니까?"
한시간반 동안 두 분이 번갈아 가면서 쉬지 않고 질문을 한다. 정신이 없었다. 외국인이라고 영어를 천천히 해 주는 것도 없었다. 미국 사람에게 하는 것과 똑 같이 한다. 그들은 3 시간 동안의 오랄 테스트 및 실기 시험 전체를 녹음했다. 나중에 위원회에서 다시 평가를 받는다고 했고 영구히 기록으로 남겨 둔다고 했다.
30 분의 휴식 후에 실기 시험.
"나를 환자라 생각하고 최면을 걸고 최면치료를 하십시오. 닥터 변이 평소에 하는 식으로 해보세요." 레비탄이 환자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영어로 하는 것이 익숙치는 않았으나 연습을 여러번 했었고 미국 사람도 몇 명 치료해 본적이 있기에 불안증 환자라고 가정하고 한시간 동안 최면을 했다.
그런데 최면이 끝나고 난 후 레비탄의 반응이 이상했다.
"어깨가 뻐근하고 정신이 맑지 않아요."
최면이 잘 풀리지 않는 환자의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마지막 문제 인 것 같았다.
"O. K. 다시 한번 해 봅시다." 나는 다시 최면을 걸고 이번에는 최면이 매우 편안하게 풀릴 것이라고 암시를 주었다.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 휴!'
"수고하셨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있는데 레비탄이 그 방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를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저쪽의 계단으로 내려 가길래 인사를 했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내려가는 것 이었다. '나를 못 보았나? 보고도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서 그러나?'
보스톤에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면서 오늘 있었던 시험을 다시 생각해 보니, 시험이 끝난 후 평소 친절하던 레비탄 박사의 얼굴 표정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무표정하게 느껴지던 일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찜찜했다.
보스톤에서 세인트 루이스 왕복은 노스웨스트의 보너스 마일리지에 의한 공짜표였다. 갈때는 직행이었는데 올 때는 공짜표 티를 내느라고 그러는지 쓸데없이 멤피스를 경유 해 돌아가는 표를 주었다. 그것도 맨 뒷자리. 노곤하게 앉아 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코피가 주르르 흘렀다.
흐르는 코피를 막고 있는데 문득 중학교 시험이 생각났다. 경기 중학교 입학 시험을 치고 난 후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 합격 여부를 알았을 때 갑자기 코피가 났다. 외할머니께서 '너, 굉장히 힘들었었구나'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그때는 일년내내 합숙을 하면서 과외를 했었지...
'시험에 붙어야 할 텐데. 떨어지면 이 시험을 다시 쳐!' 흐르는 코피를 막으면서 약간은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코피까지 터지면서 공부를 했는데 . . . 아! 아무래도 필기 시험이 너무 어려웠던 것 같아 . . .
쓸데없이 비행기를 갈아타려 내린 멤피스 국제 공항. 조그만 시골 도시 같지 않게 공항은 굉장히 컸다. 아마도 교통의 요지 인 것 같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인 그곳에는 그의 기념품들을 팔고있었다. 중, 고등 학교때 즐겨 듣던 엘비스를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이야 . . .
어둠이 짙게 깔린 보스톤 로건 공항이 왠지 적막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가는 시간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 . .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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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ECFMG - Educational Commission for Foreign Medical Graduate(에쥬케이셔날 커미션 포 훠린 메디칼 그래쥬에이트)의 약자로서 외국 의과 대학 졸업자에게 미국의 의과 대학 졸업자와 동등한 자격을 인정하기 위해 치루는 시험. 미국은 의과 대학 그 자체가 대학원 과정으로서 - 일반 대학을 졸업해야 의과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 - 졸업하면 Medical Doctor(메디칼 닥터)라는 박사 학위를 준다. 흔히 우리가 미국 의사를 MD 라고 부르는 것은 이 것의 약자이다.
주 2. 레비탄 박사 - 당시 나의 최면전문의 시험관이었던 그를 나는 작년(1998) 가을에 한국에 우리 학회의 강사로서 초청했다. 그는 서울의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강당에서 최면의학 워크샵을 했다. 나로서는 의미있는 초청이었고 만남이었다. 우리는 부부동반으로 민속촌을 구경했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의대의 교수이며 내과의사로서 암 전문의이고 최면 전문의인 특이한 경력의 사람이다. 코넬 대학교와 뉴욕 의대를 나왔다. 세계적인 학술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학술 논문을 싣기도 했다.
주 3. 하버드 야드(Harvard Yard) - 이 곳은 영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에서 하버드 대학생인 주인공이 눈밭을 뒹구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이다.
주 4. 패스 - "Pass"란 "전달"이라는 뜻이다. 전에는 최면이 유도자로부터 피술자에게 어떠한 힘이 전달되어 걸린다고 생각했다. 이 것은 사실이 아니다. "기"가 전달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물리적으로 전달되어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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