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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7. 하버드 대학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9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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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뚫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노스웨스트의
2등석에 편안하게 앉았다. 김포에서 짐이 무겁다는
관계로 탑승수속이 늦어졌는데 이 바람에 3등(이코노미)석이 모두 찼고
그래서 전화위복으로 2등석(비즈니스)에 앉혀지게 되었다.

비행기를 여러 번 타보면 알겠지만 처음에는 아무자리나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장시간 여행을 하려면 3등 자리가 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2등석은 자리도 크고 모든게 편하다. 요금이 2배이니까. 어쨌든 유학길에 처음부터 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가게 되다니 좋은 일이었다.

하버드라는 이름은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유난히 최고 지향적인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에서는 하버드나 예일이나
스탠포드나 MIT나 모두 같은 급이지만 하버드만이 특별 한 듯 하다.
하다 못해 책상 이름도 하버드라는 상표가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수많은 상처를 받고 핍박 받아온 약소 민족이기에
열등감이 깊이 배여 있고 그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고와 함께
하려는 그리하여 마치 자기가 최고와 동격인양 무의식적으로 착각하고는
스스로 만족해하는 양상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하버드는 다른 어느
이름보다도 특별하다.

그러나 이는 내가 나중에 안 사실이고 당시에 나는 특별히 하버드라는
이름에 애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하버드에 가고있는 이유는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최면으로
심한 정신질환, 예를 들면 정신분열병이나 조울병 혹은 성격장애 같은 병들을
치료하는 법을 배우는 것인데 그러한 치료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하버드에
있기 때문 일 뿐이다. 그가 바로 나의 초청 후원자인 브라운교수다.

서울의대 정신과 출신 중에는 내가 최초의 하버드의대 정신과 유학생이다.
내가 다녀온 후 최근에 몇 사람이 다녀왔다고 들었지만 당시에는 서울의대
정신과 출신 중에는 하버드에 유학 한 사람이 없었다.

나의 지위는 Visiting Lecturer이다. 하버드에서 외부 학자를 초청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급이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것이 Visiting Professor이다. 대부분
노벨상에 필적하는 세계적인 인물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이
Visiting Lecturer 인데 넓은 분류로는 둘 다 교수급이며 다른 학교의 교수들을
초청 할 때 이 지위를 준다고 한다.

대부분 의사들이 미국에 유학 할 때 연구원이나 연구조수등으로 가는 게 보통인데
왜 나에게 교수급의 대우를 해 주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이 33세에 한국에서 교수도
아니고 이제 전문의 된지 2년 지난 그저 평범한 의사인데 말이다.

지난 4월에 캠브리지병원에서 면접 할 때 미모의 정신과 여의사인 부과장 모렌교수가
나의 점수를 후하게 주었나보다. 그녀를 포함한 그쪽 사람들이 아마도 최면계에서의 나의
경력을 인정해 주었나 보다. 당시 나는 뉴욕에 사는 재미 정신과의사인 김병석선생님과
함께 정신과의사들 위주로 의사들만의 전문적 최면 단체인 대한최면치료학회를 설립하였고
2년 동안의 초대 총무를 거쳐 회장직을 맡고 있었으니 젊고 경력도 미비하지만 그래도
일 국의 한 분야의 헤드(Head)라는 이유로 교수직을 준 것 같다.

반나절이 넘는 비행 후에 우리는 디트로이트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마치고 목적지인
보스턴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으로 다시 갈아탔다. 수 시간의 비행 후에 다시 보는 보스턴의
로건 국제 공항은 처음과 달리 낯익었다.

고교동창인 창훈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예과 때 이후 15 년만의 만남이었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MIT 수학박사다.

보통 한국에는 MIT가 매사츄세스 공과대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MIT는 공대가 아니다.
처음에는 공대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종합대학이고 대부분의 학과가 세계최고 수준이다.
다만 의대는 없는데 이는 자기네 부속 병원들을 MIT에 빼았길까봐 염려한 하버드의 방해 공작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왜냐하면 하버드의 부속병원들은 대부분 그 소유가 하버드가 아니고 각각의 독립기관인데
행정적으로만 연계가 되어있다. 따라서 한국적인 의미로 부속병원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연계병원 일 뿐이다. 미국은 대부분 연계병원 시스템이 많은데 이를
Affiliated Hospital 이라고 한다. 그래서 MIT에서 의대를 만들면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병원들이 연계관계를 MIT로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여간 그 대신 하버드에는
공대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던가 . . .

캠브리지의 찰스 강변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에 있는 그의 집에서 몇 일간 집을 구하기 전까지 머무르기로 했다. 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 난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정신과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의 치료법이 있다.

약을 이용하는 약물치료와 정신적인 방법들을 이용하는 정신치료다.
1950년대들어 정신질환에 효과가 있는 약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밖에 안된 이야기이다. 그전까지는 정신병에는
약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치료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말로 치료하다가 안되면 아마도 전기충격을 주거나 인슐린으로 쇼크를
주거나 그저 가두거나 등등. . .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정신병에 약이 듣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분야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편리한 치료법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적인 흐름이어서 점점더 정신과의사들이
이제 정신이나 마음 따위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고 모든 것을 약으로 해결해
보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즉 약물치료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의
정신과 치료는 대부분 약물치료이고 단순히 증상에 따라 병을 분류 한 뒤
무슨 약을 먹어라 하고는 끝이다. 특히 종합병원일 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많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러한 경향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국정신의학회를
차라리 미국정신약물학회로 바꾸라는 조롱 섞인 야유도 나올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물질로만 이루어져있지 않다. 그 물질을 움직이는
것은 정신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치료를 등한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약으로
간단히 해결 될 수 있는 병을 정신적 치료를 한답시고 질질 끌어서도 안되겠다.
즉 인간의 두 가지 구성요소인 물질과 정신을 다 볼 줄 알아야 정신질환을 치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드의 여러 부속병원의 대부분의 정신과가 약물치료를 연구하는 곳으로
바뀌었으나 캠브리지 병원은 전통적으로 정신적 치료를 중요시하는 곳이고
약물치료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나 아직도 정신적 치료를 위주로 연구한다.
나는 정신적인 치료에 관심이 많으니 나에게 가장 적절한 병원이었다.

캠브리지 병원은 캠브리지시의 시립병원이다. 캠브리지시는 인구 10만 명 정도의
작은 규모이지만 그 적은 10만 명의 인구들 중에 노벨상 수상자들로만 야구팀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세계 최고의 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전세계 유일한 동네다. 왜냐하면
하버드와 MIT가 모두 이 작은 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캠브리지병원은 최근에 힐러리 여사가 미국 내에서 가장 지역사회 정신의학이
잘 된 병원이라고 시상 한바가 있다. 건물 자체는 크지 않고, 종합병원이지만
정신과가 가장 크고 정신과와 그 외 몇 개 과 만이 하버드와 연계되어있다.
에릭 에릭슨이라는 당대의 정신분석가를 포함하여 많은 세계적 정신치료의 대가들이
이 병원에 근무했었고 또 근무하고 있다.

번잡하지도 한적하지도 않으면서 하버드 교정과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그래서 하버드의 냄새가 많이 풍기는 유일한 부속병원이다. 다른
하버드의 부속병원들은 보스턴 시내에 위치하여 하버드 교정과는 떨어져있다.
이들 병원에서는 하버드대학교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나는 나중에 몇 군데
다른 부속병원들을 그 병원에서 최면을 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또한 그 병원의 최면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두루 가 보았는데 그저
도심 속의 병원이라는 분위기뿐이었다. 나는 하버드대학교의 정취와 분위기를
간직하며 정신적 치료를 주로 하는 캠브리지 정신과에 다녀온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병원의 리 막트 센터 2 층에 위치한 브라운 박사의 방을 찾아갔다. 그는 당시나이
42세로 젊은 나이에 병원의 수석정신학자이며 행동의학분과장 이었다. 그는 정신과의사는
아니지만 최면치료에 관한 한 당대의 대가로 최면학회에서 이름이 나 있었다. 미국은
Psychology 학과(한국의 심리학과에 해당한다)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 병원에서
일정기간 환자를 치료하는 수련을 거쳐 국가에서 치르는 면허 시험에 합격하여 면허를
취득하면 임상정신학자라는 호칭을 주는데 이들은 의사와 마찬가지로 환자를 치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대개 박사학위 취득 후에 면허를 따기까지 5-7년의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말했다 시피 최근의 정신과의사들이 주로 약물치료로 방향을 선회하는 바람에
정신적 치료를 하는 의사들이 줄어들었고 그래서 정신적 치료는 미국에서는
임상정신학자들이 많이 하고 있다. 또 일부는 그 수준이 정신과의사를 모두 합하더라도
이미 세계 정상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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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영어의 psychology는 한글로는 심리학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나는 이를 심리학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정신학으로 번역하려한다. 내가 말하는 임상정신학자란 영어로는
Licensed Clinical Psychologist를 이른다.






하버드대학교 캠퍼스와 보스톤
다니엘 브라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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