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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 캠브리지 병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9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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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란의 생활은 여전히 투쟁의 연속이었다.
결혼 생활을 어떻게든 유지 시켜 보려고 하는 그녀의 의지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나를 사랑
하며, 나에게 사랑 받고 인정 받고 싶어하는 깊이 만큼이나 깊은, 남편을 붙잡아 두려는 노력은,
처절한 사투에 가까왔다.

"선생님!"
"예."
"제가 말이예요, 지금 까지도 치료를 열심히 받아왔지만, 나중에 치료가 다 끝나고 선생님이
이제 그만 오라고 하는 그 마지막 시간에 '지금까지 선생님에게 칭찬 받을려고 치료했어요'라고
하면 선생님 께서는 '저 또라이 아직 치료가 덜 됐구나' 하시겠죠? 하하하..."

스스로도 우스운 생각이라고 웃고있지만 사실 이 생각은 혜란에게는 매우 중요한 뿌리깊은 생각
이었다.

그녀의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 그녀는 나에게 칭찬받으려는 생각에 집착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누구인가 ?
나는 그녀의 사랑의 대상이다. 그것도 보통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람, 그녀 스스로 몇 시간 후
에 나에게 고백하듯이, '온 정신으로 사랑한 사람, 이제껏 아무도 나의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그런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로 부터 칭찬 받고 인정 받으려는 것, 즉 사랑하는 이로 부터 칭찬 받고 인정 받으려는
필사적인 노력, 그 것이야 말로 그녀의 병의 핵심임을 그녀 스스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근친 상간에 대한
의심이었다.

남편의 고모가 집에 일하러 와있는데 두 사람이 성관계를 할 까봐 두렵다면서 항상 감시했다.
"저라면 5촌 아저씨 뻘 되는 사람이 집에 와 있다면 남편 없을때 감쪽 같이 성 관계 하고 숨
길 수 있을 거예요."
모든 여자는 그녀의 남자에 대한 적이니만치, 그 어떤 여자라도 남편과 둘만 집에 놔 둔다는
것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시동생 부부가 와도 걱정, 시누이가 와도 걱정...
임신이 되었다. 결혼 한지 이미 1 년 이상이 되었음으로 남편과 시집의 이런저런 압력이 있다
면서... 그러나 임신은 남편을 붙잡아 두려는 방편이었다.
"임신이 되니까 어떤가요?"
"화가나고 불안도 더 심해졌어요. 아프기도 하구요."
"어떤 생각들 때문에 그런것 같아요?"
"내가 애 까지 낳아줘야 되요?"
"무슨 말인지요?"
"너무 돈 없는 사람이랑 결혼 했잖아요. 돈도 벌어다 주는데 애까지 낳아줘야 되냐구요 ?"
". . ."
" 한달에 200만원쯤 갖다주는 의사 남편이라면 모를까. 그러면 억울하지 않겠어요. 이건 돈 벌
어다 주지요, 애까지 낳아 주지요.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요."
" . . . "
"제가 너무 돈으로 따지나요?"

한국 여자들은 유난히 애를 낳은 후에 이런저런 병이 많다. 산후에는 아이스크림도 먹으면 무슨
병이 생긴다는등. . . 미국 여자들은 이런게 별로 없다.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 여자들은 여
기가 쑤신다 저기가 저리다 . . . 특별한 병도 없는데 그런다. 왜그럴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유세를 떨기 때문이다. 즉 애를 낳은 것을 자기 애를 낳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자에게 애를 낳아서 준다는 무의식적인 생각 때문 인 것이다. 혜란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보통 여자들이 '애를 낳아 준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한마디로 염치 없는 생각이다. 자기 애를 낳으면서 왜 남자 애를 낳아준다고 유세를 떠는지 모를
일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까요 ?"
"사실은 전 애기를 원치 않아요. 대식이 에게 죄스럽기도 하구요. "

그렇다. 사실은 애를 갖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그 외에 임신하고 증세가 심해진 이유가 또 있을까요 ?"
" 임신을 하니까 아버지하고 선생님에게 챙피해요."
" 무엇 때문에 ?"
"마치 간통하다가 틀킨 기분이예요. 임신이 되었다는게 그 증거가 되잖아요"
임신은 성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녀는 임신 했다는 사실을 현재의 남편과 성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와 내가 알게된
증거로 생각하면서 또한 그것을 '간통'이라고 표현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정신적으로는 아버지와 나를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남편과의 관계를 정신적으로는 불륜의 관계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과거의 그리고 나는 현재의 정신적인 남편인 것이다. 그녀 스스로 ' 의사 남편이라면
모를까' 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죄의식이 들구요. 그래서 노이로제 증세도 더 심해졌어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구요."

혜란의 정신 속에서는, 현실의 남편은 남편이 아님으로, 남편과의 관계는 당연히 불륜이며
따라서 불륜에 의한 임신으로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 뭐 좋은 점은 없어요?"
" 유세 떠는 것은 좋은 점이죠. 엄살 부려도 잘 받아주고요."
" 그 외에는요 ?"
" 별로 없어요 ."

그녀의 회사 생활은 스스로는 개선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엉망이었다.
" 인사 고과가 나왔어요.거의 꼴찌예요."
" 왜 그런것 같아요 ?"
" 처음에 입사 할 때 잘 못 보인게 그대로 가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렇게 불성실 한 것도
아닌데..."

한편 나의 최면 공부는 이제 3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작년에는 대한최면치료학회의 회장직
을 맡았고 대학 병원에서의 강연, 학회의 세미나 및 워크 샵등을 계속 해오면서 최면 공부에 어
느정도 진전이 있어서 이제 불안, 공포등의 치료에 있어서는 나름 대로의 치료 방법에 자신이 있
었으나 더욱 복잡한 병의 치료, 예를 들면 성격 장애나 정신 분열병의 최면치료에는 별로 방법이
없어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 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시카고 대학교의 에리카 프롬 박사가 성격 장애를 최면으로 치료 하고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와 편지 교류를 시작 했고, 그녀가 수제자라고 말하는, 하버드 대
학교의 다니엘 브라운 박사와 함께 최면치료 워크샵을 하버드 대학교 병원에서 한다고 하여 다녀
오기로 하였다.

또한 나는 보다 깊은 공부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미국 유학이 필요 하다고 느껴져서 브라
운교수에게 내 의사를 밝혔고 마침 브라운이 자신의 책임 아래 최면치료를 지도 해 주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번에 방문하는 김에 가을 학기 부터 일년간 하버드에 유학 할 생각을 하고 필
요한 서류들을 갖추어 하버드측과 면담 일정도 잡아 놓았다.

"나를 내 버려두고 가면 어떻게 해요!"

속으로 부터 솟아 나오는 화를 참으면서 부르짖던 혜란의 말 소리를 뒤로 하면서 나를 싣고
온 노스웨스트는, 보스톤의 로건 국제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고 있
었다.

전설속의 하버드가 있다는 보스톤의 첫 인상은 대도시로서는 약간은 실망 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까지 가 보았던 뉴욕이나 시카고의 그 웅장하고 화려한 도심에 비하면 시내에는 높은 빌딩
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들도 대부분 오래된 것들이었다. 오히려 서울의 도심 보다도 작아보
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보스톤 도심을 거쳐 20 분쯤 후에 캠브리지 병원에 도착했다. 도착 시
간이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퇴근하고 없었다. 나는 근처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내일 아
침 부터 있을 워크 샵을 기대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행정 구역 상의 보스톤 시는 인구 약 50만 정도의 적은 구역이나, 그 주위로 약 300만 정도
가 행정 구역상 여러개의 자그마한 도시로 나뉘어진 지역에 거주하며, 그 일대를 보스톤 지역
이라고 부른다.

캠브리지 시는 보스톤과 챨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있는 곳인데, 하버드 대학교는 바
로 이 곳에 위치한다. MIT(주 1) 도 이 곳에 있어 이 지역은 세계에서 두뇌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캠브리지 병원은 이 곳에 있는 하버드 의대 부속 병원인 것이다.

워크샵은 병원의 별관이며, 정신과 건물인 리 막트 센터의 2층 강당에서 있었다.

이곳의 정신과는 입원 환자는 없으며, 외래 환자들만을 진료하고 있는데, 외래 환자들만을
보는데 4 층 건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프롬과 브라운에게 왔노라고 인사하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장기 정신치료 환자들의 치료법을 최면치료로 바꿈으로 해서 치료 기간을 1/3 이내
로 단축 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주 2 - 3 회의 정신치료로 3 - 5 년이 걸리는 환자를
최면으로 치료 할 경우는 주 1 회의 최면치료로 1 - 3 년이 걸리며, 주 5 회의 정신분석을 3 - 5
년 받아야 하는 환자를 최면분석을 하면 주 1회 의 최면분석으로 3 - 5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병들에는 최면이 최선의 치료법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들의 이론과 치료 기법은 매우 정교해서 혜란을 비롯한 여러 환자들을 치료 하고 있
는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역시 하버드는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 곳에 와서 공부할 생각을 하니 미리 부터 마
음이 설레고 흥분이 느껴졌다.

사실 이당시 나는 두군데를 놓고 망설이는 중이었다.
하버드에서는 브라운이 초청을 해 주겠다고 했었으며, 스탠포드의 데이비드 스피겔도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장기 유학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 편지를 내었을 때, 모든 준비를 해 놓을테니 오
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최면 의학계에서 차지하는 인물의 비중으로만 본다면 스피겔쪽이 더 유명하다. 이미 그는
전세계 적으로 권위자 위치에 있었다.
브라운은 아직 나이가 젊다. 프롬은 스피겔 만큼이나 최면 의학계에서 알려진 권위자이나
브라운은 나이가 이제 40이니 아무리 프롬이 자신의 40년동안의 제자중 가장 뛰어난 수제자라고
했지만 지명도는 스피겔에 비하여 떨어진다.

최면 의학계에서의 지명도 자체만으로 본다면 당연히 스피겔에게 가야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이유로 브라운에게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하나는, 스피겔은 단기치료이고 브라운은 장기치료라는 점이다.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성
격 장애 같은 고질병을 고치는 장기 최면 분석 치료법이었다.
둘째는, 하버드에 대한 선망이었다. 물론 스탠포드나 하버드나 거의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버드를 보지 못하면 내내 하버드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70대 후반의 프롬과 40대 초반의 브라운은 마치 어머니와 아들 같은 사이로, 시카고 에서
온 프롬은 브라운의 집에서 묵고 있었다. 저녁 초대를 받아 갔던 브라운의 집에서, 그날은 마침
브라운의 40세 생일 몇일 전이어서 나를 환영함과 동시에 그의 생일 파티도 겸한다고 했다.
프롬은 마치 손자를 대하듯 나에게 따뜻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과 이제 까지의 나의 경험
들과 그들의 경험들을 밤 늦게 까지 나누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다. 내가 세계적인 대
가들과 같이 앉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니,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4월의 보스톤은 생각보다 추웠는데, 나의 복장을 본 브라운이 자기의 긴 코트를 입혀 주면서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3 일간의 워크샵이 끝나는 날, 프롬은 캐나다에서온 소아 정신과 의사와 나를, 요리를 잘 하
는 곳이 있다면서, 보스톤 항구의 한 해물 식당으로 안내했다. 보스톤의 특산물인 바다 가재 요
리를 들고, 프롬을 브라운 집 앞에 내려주고, 호텔에 돌아오니 어느새 늦은 밤이었다. 초보 운전
사 인듯한 택시 기사가 브라운의 집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밤 거리를 약간 헤메게 되었
는데 택시 요금은 좀 더 나왔지만 오히려 나는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할 수가 있어 좋았다.

다음날 나는 캠브리지 병원의 정신과 과장과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가을 학기 부터 이 곳에 공부 하러 오게 될 예정 이었으므로, 나의 자격과 어떤 직함으로 초
청을 할 것인가를 그들이 심사하는 자리라고 했다. 과장이 여행중이어서 부과장인 모렌 박사가
대신해 주었다.

모렌의 방은 1층 제일 끝에 있었는데, 마치 영화 배우 같은 아름다운 그녀의 용모가 인상적
이었다. 너무 예뻐서 남자 환자들이 반할 것 같았다. 이미 브라운에게 이야기 다 들었다며, 다정
하게 여러 가지로 나에 대해서 물어본 후, 영어를 매우 잘 한다고 하면서 가을에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몇일간의 관광후 나는 혜란이 기다리고 있을 서울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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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MIT(Massachusettes Institute of Technology): 한국에는 'MIT공대'라고 알려져 있는 이학
교는 사실은 공대가 아니다. 처음에는 공대로 시작을 했겠지만 지금은 종합대학이다. 따라서
'MIT공대' 라는 말은 틀린 것이고 단순히 MIT 혹은 MIT대학교로 부르는게 맞는 말이다. 여담인
데 MIT에는 세계 최고의 대학교임에도 의대가 없다. 의대를 만들려고 했을 때 하버드가 적극적
으로 방해 공작을 펴서 무산되었다. 대신 MIT의 의료를 하버드에서 책임져주기로 했다고 한다.
하버드의 부속병원들 중의 일부가 MIT와 계약을 맺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버드의 병원
들은 하버드 대학교의 소유가 아니고 연관관계로 맺어져있다.






에리카 프롬 교수
시카고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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