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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 시카고에서 보낸 그림 엽서(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9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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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은 잊지 못할 기억이 있는 곳이다. 작년, 케이프 코드에 다녀 올 때,
나는 노스웨스트를 타고 시카고에서 입국 수속을 한후 뉴욕 행으로 갈아 탈 예정이었다. 미국은
나에게 초행길이었던 데다가, 휴가철이어 승객이 많았던 관계로, 뒷좌석에 타고 왔던 나는,
입국 수속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어 예정된 비행기를 놓치게 되었다.

그 날은 이미 뉴욕행 노스웨스트가 더이상 없었으므로, 안내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의 비행편으
로 바꾸어 주었는데, 노스웨스트 항공의 터미널과 유나이트드 항공의 터미널이 너무나 멀리 떨어
져 있어서 공항내의 셔틀 버스를 타야만 했다.

겨우 찾아가니 한다는 말이, 그날의 마지막 비행기인데 지정된 자리가 없다고 했다. 웨이팅
(waiting)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빈자리가 있으면 가고 없으면 못 간다나. 뉴욕 공항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계실 김병석 박사님이 생각나서 걱정하고 있는데 마침 한국인 같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
왔다. 알고 보니 경기고등학교 2년 후배란다. 스탠포드에 유학중이라는 장군이 뉴욕에 전화도 해
주고, 마침 비행기 자리도 있고해서 그날 안으로 뉴욕에 도착해서, 마중 나온 김선생님을 만났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오헤어 공항을, 미국 땅에 처음 떨어진 나 혼자서 찾아다닌 것이 무척 힘
들었었다.

그러나 다시 보는 오헤어 공항은 매우 정겹게 느껴졌다.
3월의 시카고에는 눈이 와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호텔에 묵지 않고, 최면학회 회원인 닥터 써쳐(Sutcher)의 집에서 묵기로 했는
데, 돈도 아끼고(공짜니까) 미국 사람들 사는 것도 보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50이 좀 넘은 치과
의사인데 서울에서 내가 편지하니 자기 집에 와서 그냥 묵으라고 했다. 그의 집은 미시간호 호반
의 노스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North Lake Shore Drive)에서 이어지는 쉐리단 로드에 위치한 70
층 호텔식 아파트(주 1)의 43층에 있어서 전망이 매우 좋았다. 리빙룸에서 미시간호의 경치가
그대로 보였다.

미시간 호는 말이 호수이지, 수평선과 밀려오는 파도가 차라리 바다였다.

학회는 미시간 호반의 노스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를 지나 시내의 중심가인 미시간 애비뉴와
시카고 강이 만나는 부근에 위치한 하이야트 호텔에서 있었는데, 학회 시작 전 날에는 학회 임원
및 초대 손님들을 위한 리셉션이 있었다. 회장인 닥터 뮤터와 총무인 닥터 해몬드를 비롯한 임원
들과 그들의 부인들이 커피를 끓여주는 오붓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한국 학회의 대표 자격으로 초청되었기 때문에 이사회등 학회의 각종 행정 회의들에도 참석하면
서 학회의 전반적인 운영 방식을 배움은 물론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어서 외교적인
면에서도 소득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내가 시카고 학회에 온 것은, 최면이 잘 안 걸리는
사람인 것 같은데도 환자 본인들은 최면치료를 해주기를 고집 하는 경우의 치료법이었으며, 그런
종류의 치료법이 이미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나보다 먼저, 같은 길을 걸었던 많은 선배 최면
의사들도 이러한 경우를 부딪히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최면이 잘 걸리는가 하는 것을 최면 감수성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두 가지 차원이 있다.

객관적인 것이란 암시에 대한 반응이 겉으로 얼마나 많이 드러나느냐 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손이 풍선처럼 가벼워 졌다.' 고 말을 들었을 때 정말로 손이 풍선처럼 가벼워지면서 위로 올라
가는 현상이 얼마나 잘 생기는가 하는 것 등이다.

주관적인 것이란 그 사람이 최면 상태를 얼마나 깊은 상태로서 경험을 하는가 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면 아무런 잡념 없이 그야말로 고요하고 평온한 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등을 말한다.

30대 여자 환자가 L. A.에서 멀리 아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밀튼 에릭슨이라는 최면의사를
찾아와서 말했다.
"제가 6 살 때부터 17 살 때까지 아버지가 저를 성적으로 괴롭혔어요, 일주일에 여러 번씩
규칙적으로 성교를 당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두려움에 떨었어요. 더럽고, 천하고 창피했어요. 17살
이 되었을 때 저는 아버지로부터 탈출 할 수있었어요. 집을 나와 독립을 한 거죠. 그리고 혼자서
고등학교를 마쳤죠. 이제는 열등감이 좀 없어지려나 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대학생이 되면 좀 낳을 줄 알았는데 마찬가지 였어요. 대학원을 다니면 좀 낳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마찬가지 였어요. 학교에 다닐 때 남자들이 절 유혹하면 난 그들이 저를 데리고 놀려고
그러는 것으로 생각되어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어요. 박사과정까지 애써서 마쳤지만 아직도 저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 나이까지 혼자 살은 건 아니에요. 위로 받고 싶기도 하고, 좀더 편안하게 살고 싶기도 해서 몇
번 남자들과 동거를 했었어요. 하지만 성교를 할 때가 되면 아버지에게 당하던 악몽이 떠올라서
두려움에 휩싸이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가만히 있었어요. 남자의 즐거움을 위해서요. 그렇지만
그들은 제가 성교 할 때 너무나 아래를 아파하고 두려워 하니까 결국 저를 싫어하더군요. 그래서
절 떠나고 말았어요.

다른 남자와 재출발했었으나 마찬가지 였어요.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니 저는 이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요. 발기돼서 커진 남자의 성기를 보면 저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휩싸이고,
그가 빨리 끝내기를 바랄뿐이예요. 그가 끝내고 나면 저는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말을 들은 에릭슨은 그녀에게 최면을 걸고 그녀가 깊은 최면 상태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다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 슬픈 이야기군요. 그런데 정말로 슬픈 것은 당신이 멍청하다는 것이요. 당신은 나에게
발기된, 커다란 남자의 페니스를 두려워한다고 했지요. 그게 바로 멍청하다는 거예요. 당신은 질
을 가지고 있잖아요. 여자의 성기는 아무리 크고 딱딱하게 발기된 남자의 페니스라도 아주 작은
달랑거리는 보잘 것 없는 물건으로 만들 수 있어요. 당신은 이제 당신의 성기가 남자의 성기를
달랑거리는 작은 물건으로 만드는 것을 악랄하게 즐기시오."

이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에는 희색이 돌았다.
"한달 후에 다시 오겠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그녀가 한달 후 다시 와서 말했다.
"선생님이 옳았어요. 남자와 관계 할 때 남자의 것을 작게 줄이려고 애 썼어요. 잘 되더군요. 재미
있었어요, 자꾸, 여러 번 할 수록 더 잘되었어요. 이제는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32살의, 이제까지 학교 공부를 비롯한 보수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의 틀에 갇혀있던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 속이 번쩍 하는 느낌이 들면서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그리고 한동안
멍해졌있었다.

' 아니! 이렇게도 치료 할 수 있는 거구나.'

나라면, 아니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이라면 어떻게 그녀를 치료했었을까?
위로하거나, 잊으라고 한다던가,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한다거나 약을 주거나 . . . .

발상의 대전환, 즉 깨달음은 대개 어느 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 것은 보통 정신 상태
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최면 상태 혹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깨달음이 온다.
최면을 걸고 암시를 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똑같은 말을 해도 최면을 걸지 않고 그냥 했을 경우는 아무런 효과가 없지
만 최면을 걸고 했을 때는 순간적으로 환자가 깊이 깨달아서 금방 병세의 호전을 보이는 것이다.

시카고 학회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고 나는 내 마음이 차차로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혜란이, 나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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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호텔식 아파트는 최근에 한국에도 짓는다는 선전을 보았다. 호텔 인데 방대신에 아파트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시카고 학회전에..
닥터 쿤스타트와 그녀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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