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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 케이프 코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9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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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케이프 코드(Cape Cod)로 가는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 창 밖으로 롱 아일랜드 만에
점점이 떠있는 수백의 하얀 요트들을 내려다 보면서, 나는 대서양의 해안선을 따라
최면 워크샵으로 향했다.

나는 어제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 들어왔고, 거기에서 한국에 최면을 처음 소개하고 나와 이번
가을에 서울에서 최면 워크샵을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한 김병석 선생님의 마중을 받고 그분의 집에
서 하루 묵었다. 그분은 뉴욕주립대학병원에 정신과의사로 계셨다. 나와는 경기고, 서울대 선배라
는 것과 내가 최면에 관심이 있어 그 분을 통해 배우고자 한 것등이 인연이 되었다.

다음날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까지 케이프 코드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데에도 김선생닙께서 배웅
을 해 주었다.

케이프 코드는 미국 동북부 매사츄세스주에 있는 풍광이 매우 좋기로 유명한 고급 하계 휴양지인
데 이곳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디딘 프리머스가 있는 역사
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워크 샵이 끝 난후 가보았던 그 곳에는 메이플라워호를 본 따 그대로
만든 메이플라워 2호가 있었으며, 개척자들이 첫 발을 디뎠던 바로 그 바위인 프리머스 바위가
아직도 그대로 보존 되어있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하계 휴가를 보내는 마타스바인야드(Martha's Vineyard) 섬이 있는 곳 이기도
하며, 케네디 대통령 일가의 별장인 케네디 컴파운드도 있는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하늘에서 본 케이프 코드는 두개의 섬과 대륙으로 부터 길게 삐져나와 있는 길다란 곶으로 이루
어져 있었다. 비행기는 그중 하나의 섬인 낸터켓 섬에 잠시 승객을 내려주기 위해 멈추었다가
목적지인 하야니스 공항에 이르렀다. 착륙을 시도 할 즈음에는 울창한 숲 사이에 한줄기로 쭉
뻗은 도로가 보였다.

공항에서 렌트한 머큐리를 몰아 너셋비치(Nauset Beach)까지 한 시간 가량을 하늘에서 보았던
울창한 숲 속의 길을 따라 달려서, 바다가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해변가의 고풍스런 집을 개조하
여 만든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처음에는 고속도로 였지만 나중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 속의 길
을 달렸는데 그 길 주변의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는 이런게 바로 선경(仙境)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말이 호텔이지 인(Inn)이라고 이름 붙은 큰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여관이었다. 주인 부부인
다이앤과 알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먼길을 찾아 오시느라고 힘들었죠?" (이건 사실 영어로 한 것인데 번역한다.)
"길 안내가 잘 되어 있어서 쉽게 찾았어요."
"내가 어떻게 불러야 하나요?" 내 이름은 영어로는 Pyun 으로 표기 하는데 처음 들어 보는 단어
인데다가 미국인들이 발음 하기가 쉽지 않아서 묻는 말이다.

"그냥 'Young'(영) 이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여기가 미국이나까 미국식으로 first name으로 부르라
고 했다.
"Young은 우리집에온 첫 한국 사람입니다. 오늘 저녁은 내가 내지요."

여관 주인이 손님에게 저녁을 낼 이유는 없지만 그녀가 굳이 저녁을 내겠다는 것은 지구를 반바
퀴나 돌아서 있다는 한국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정신과 의사가 최면을 한다고 왔다는
게 여러가지로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다이앤은 나를 그녀의 빨간색 폭스바겐을 태워 촛불 분위기가 은은한 숲속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미국에서는 처음 와보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저녁을 사는
것은 내가 젊은 남자라는 이유도 있을까? 지나친 추정 일까? 어쨌거나 내가 여자였으면 이러지는
않을테지.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으며, 나는 내일 부터 시작될 나와 최면과의 본격적인 접촉에 대해 생각했
다.

우리는 주로 미국 책으로 공부한다(주 1). 아마도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의사들이 미국에서 쓰여진
책으로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는 미국이 세계 의학의 중심지가 되어있다. 그런데 그 책들에는
최면으로 병을 고치는 방법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최면은 19세기 말엽 유럽에서 치료에 많이 사용되었었다가 20세기에 들어 오면서 한계에 부딪히
게 된다. 의학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이제는 지나간 역사책에 기록되는 정도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두번의 세계 대전이 지구를 휩쓸게 되었을 때, 군의관들은 최면치료가 군인들의 전쟁
공포를 없애는데 최선의 방법임을 발견하게 된다. 제 2 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최면치료는 본격적
으로 미국 의사들에 의해서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약물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환각제등이 의식 상태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을 치료
하던 의사들은 왜 그들이 감옥에 갈줄 뻔히 알면서도 그 상태를 경험하고자 하는가? 에 의문을
품게된다. 즉 도대체 그 상태가 얼마나 좋은 상태 이길래 감옥에 가는 것을 불사하고 약을 먹느
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환각제에 의해서 도달할 수 있는 상태와 비슷한 상태가 약물에
의하지 않고 단순히 정신 집중을 통해서도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그 정신의 변화된 상태는 바로 무아지경의 상태라고 예로 부터 불리워 지는 상태이며 그 상태는
의학적으로는 최면 상태인 것을 확인하였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최면에 관한 관심이 새로이
생겨났다.

나와 서울에서부터 서신 연락이 있었으며, 그 동안 나의 최면 공부를 멀리서 나마 성의껏 도와
주던, 스피겔 박사는 제 2 차 세계 대전 당시 군의관이었다. 그는 전쟁중에 최면의 효과를 체험하
고 부터 뉴욕의 콜롬비아 의대에서 최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케이프 코드에서 하는 워크샵은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그가 하는 것이었다.

워크샵은 웰프리트 시네마 에서 열렸다. 웰프리트라는 마을의 극장인데, 시골의 극장이어서 그런
지 혹은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낮에는 영화 상영을 하지 않았다. 뉴욕의 아인슈타인 의대 정신
과에서 주최하는 워크샵들은 여름 동안 매주 주제를 바꿔가면서 계속되는데 최면은 8월 초순의
일주일 간 이었다.

월요일 아침, 너셋 비치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웰프리트 시네마에 도착해서 스피겔에게 인사를
했다. 왔습니다. 의외의 수강생을 그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로서는 책이나 비디오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고 배운다는게 신기했다.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 정통종합영어의 저자직강 이라고나 할까? 정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300여명 쯤되는
수강생중 동양계는 캐나다에서온 일본인과 나 였는데, 때 마침 다음 해에는 서울 올림픽이 열리게
되어있었으므로 첫 시간을 시작하기전에, 스피겔의 아들이며 하버드 의대 졸업 후 스탠포드 의대
정신과 교수로 있으면서 아버지와 같이 최면을 하고있는 데이비드 스피겔 교수가 나를, 올림픽이
열릴 한국의 서울에서 왔다고 일부러 불러내서 소개 해주었다. 올림픽 덕을 좀 보았다.

그들의 최면치료는 단기치료였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있던 정신치료법들이 대부분 장기 치료였음
으로 단 몇 시간에 치료를 한다는 것은 신기하기 까지 했다. 불안, 공포, 통증, 나쁜 습관및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생긴 병들을 최면으로 치료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강의, 실기등을 했다.

나는 버지니아에서온 내 또래의, 약간 통통하면서 금발인 예쁘장한 여의사 낸시 니콜라스와 한짝
이 되었는데, 미국인과 최면 실습을 한다는게, 재미도 있고 일면 신기하기도 했다. 낸시의 숙소가
워크샵 장소 근처에 있어서,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한후, 우리는 오후
내내 그 곳에서 서로 익숙해 질 때 까지 번갈아 최면을 걸어가며 실기 연습을 했다.

다음날 오후는 워크샵 참석자들이 단체로 대서양으로 고래 구경을 나갔다.

웰프리트에서 자동차로 1시간 쯤 가면 프라빈스타운에 이르는데, 그곳이 케이프 코드의 끝이다.
그 곳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 넘게 대서양으로 나가면 바다밑에 뱅크가 있어 고래들의 먹이가
많기 때문에 그곳에 고래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자연 상태 그대로 살고 있는 고래들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었다. 커다란 고래들이 등에서 하얀 물보라를 뿜어대는 모습이 멋 있었고 신기
했다. 피노키오의 고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선장은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한다면서 잘 보라고
배를 고래의 바로 옆에 대어주기도 했다.

배 위에서 데이비드 스피겔 부부를 만났다. 내가 아는체를 했다. 자기도 고래 구경은 처음이라면
서 반갑게 알아보았다.

"닥터 변 안녕하세요." (이건 영어로 한 것인데 번역한다.)
"이런 곳에서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소개합니다. 집사람 그리고 아들이예요." 부인은 서양인 으로서는 약간 갈색인 듯한 피부에 체격
이 큰 갈색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수줍은 듯이 몸을 약간 꼬고 7 살 쯤 된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다리 뒤로 숨으면서 웃고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했다.

"여기에서 바다 저쪽이 보스톤이죠. 가보았어요?"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아래로 아련한 육지쪽
수평선을 가르키며 데이비드가 말했다.
"아니요. 못 가봤어요. 뉴욕에서 바로 이 곳으로 왔어요."
"보스톤에 하버드가 있지요. 우리는 그곳에서 연애 했어요."
스피겔이 자랑스러운 듯이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얘기했다.

말로만 듣던 하버드, 마치 전설처럼 느껴지는 하버드가 저넘어에 있단 말이지. . .

내가 하버드에 대해 아는 것은 서울대학교 배지의 디자인이 하버드의 것을 모방 한 것이며 배지
의 문구 또한 그렇다는 것(주 2) 정도일 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사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나와는 그때까지 별로 상관이 없었으니까.

목요일은 세미나의 주최자인 아인슈타인 의대 정신과의 레빈 소장과 스피겔 부자 그리고 나 넷
이서 점심을 같이 했다. 레빈 소장의 차를 타고 숲 속의 아담한 레스토랑의 야외석에 자리를 잡
았다. 내가 무슨 큰 손님도 아니고 그저 이름 없는 나라에서 온 별 것도 아닌 의사 일 뿐인데
이런 대접을 했다는게 지금도 나는 이상하다. 우리 같으면 네팔에서 워크샵에 온 이름 없는 의사를
한국 최고의 의사가 일부러 데리고 가서 식사 대접을 하겠나? 물론 내가 같이 한 번 식사를 했으
면 한다고 했지만. 레빈 소장이 그 지방의 특산물이라며 랍스터요리(주 3)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개인적인 얘기들과 한국에서의 최면에 관한 얘기들도 있었지만, 주로 내가 스피겔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스피겔의 최면 유도법을 이용하니 한국 사람들도 미국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등 나의 경험담을 얘기 해주니 그는 최면 상태가 전 세계인에 공통인 현상의 증거의 하나라며
흥미있어 했다.

금요일 오후에는 숲 속의 레스토랑을 빌려서 종강 파티가 있었다. 그동안 가까와진 몇몇 사람들
과 지난 일주일 간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아쉬워했다. 처음가보는 마국인들의 파티였지만 즐거웠
다. 촌스럽지만 나로서는 처음 가보는 미국이니 기념사진도 찍고 그랬다.

토요일, 하야니스 공항에서 렌트카를 반납하고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나는 지난 일주일간
의 나의 상태가, 최면 상태 바로 그것 이었음을 깨달았다. 정신 없이 한가지에 몰두한 상태 그게
바로 무아지경이요 몰입경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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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전에는 대부분의 의대생이나 의사들이 영어책으로 공부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출판 된
의학 책들도 많아서 요즘 의대생들을이나 의사들을 보면 한국책도 많이 보는 것 같다.

주 2: 서울대학교 배지에 새겨진 문구는 VERI TAS LUX MEA(베리 타스 룩스 메아; 진리는 나
의 빛)이고, 하버드대학교의 그것은 VERI TAS(베리 타스; 진리)이다.

주 3: 랍스터(lobster; 바다가재)는 요즘은 한국에도 전문점이 여럿 생겼지만 당시에는 거의 없었
다. 나는 여기에서 처음 먹어봤다. 맛은 별로다. 미국의 동북부 지방은 세계적인 바다가재의
주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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